일하면서 치료관이 바뀐 순간들 – 재활을 다시 보게 된 계기들

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치료에 대해 비교적 단순하게 생각했다.

문제가 있으면 고치고, 약해진 부분은 강화하고, 운동을 하면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.

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의 몸을 계속 보다 보니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.

열심히 하는데도 안 좋아지는 사람들을 보면서

가장 먼저 흔들렸던 순간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회복이 느린 사람들을 볼 때였다.

운동도 빠지지 않고, 집에서 하라는 것도 잘 지키는데 통증은 그대로인 경우.

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“왜 이 사람은 안 나아질까?”였다.

그리고 그 질문은 곧 “혹시 내가 보는 기준이 너무 단순한 건 아닐까?”로 바뀌었다.

통증이 줄지 않아도 회복이 진행되는 순간들

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줄지 않아도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.

움직일 때 덜 조심스러워지고, 예전엔 망설이던 동작을 조금씩 시도하는 모습.

통증 점수는 그대로인데 몸의 반응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.

이때부터 치료의 기준이 ‘통증 감소’ 하나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됐다.

운동을 많이 시키는 게 항상 답은 아니었다

예전에는 운동을 많이 하면 그만큼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.

하지만 오히려 운동을 줄였을 때 몸이 편해지는 경우도 많았다.

특히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는 운동을 더하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.

이때부터 운동의 양보다 운동이 들어가는 타이밍을 더 보게 됐다.

같은 운동, 전혀 다른 결과

같은 운동을 시켜도 사람마다 반응이 너무 달랐다.

어떤 사람은 바로 편해지고, 어떤 사람은 오히려 불편해졌다.

그 차이는 운동 자체보다 몸이 그 운동을 받아들이는 상태였다.

이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‘좋은 운동’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게 됐다.

몸은 생각보다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됐다

아주 작은 변화에도 몸은 바로 반응했다.

자세 하나, 호흡 하나, 힘을 주는 순서 하나.

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회복 속도를 바꾸는 걸 보면서 치료를 훨씬 조심스럽게 보게 됐다.

환자의 말이 더 중요해진 순간

예전에는 움직임이 잘 나오면 괜찮다고 판단했던 적도 있다.

하지만 겉으로는 잘 되는데 느낌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겪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.

몸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느낌에 더 솔직했다.

이후로는 환자의 표현을 훨씬 더 중요하게 듣게 됐다.

회복은 빨리 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

회복을 빨리 시키는 게 좋은 치료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.

하지만 빨리 가려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.

조금 느려 보여도 안정적으로 가는 게 결국 더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.

치료는 정답을 주는 일이 아니었다

지금은 치료를 이렇게 본다.

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, 몸이 다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길을 정리해주는 과정.

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더 하려 하기보다 불필요한 걸 줄이려고 한다.

마무리

일하면서 치료관이 바뀐 순간들은 대부분 실패처럼 보이는 경험에서 시작됐다.

안 낫는 사람, 느린 회복, 예상과 다른 반응.

하지만 그 덕분에 치료를 훨씬 입체적으로 보게 됐다.

지금은 조금 더 기다리고, 조금 더 듣고, 조금 더 몸을 믿으려고 한다.

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치료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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